며칠 뒤 그녀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공식적으로 연인이 되었습니다. 생각해보면 낯선 두 사람이 만나서, 서로에 대해서 조금씩 알게 되고, 이야기를 나누고, 가까워지는 이 과정 마냥 신기하기만 합니다. 처음 그녀를 만나게 된 것은 우연히 참석했던 어떤 모임. 연애를 하러 나간 것은 물론 아니였고, 어떤 기대가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그렇게 우연히 그녀를 알게 됐고, 잦은 연락을 하게 됐고, 내 감정이 그녀에게 끌리고, 용기를 냈고, 이제 연인이 되었습니다.

어느 덧 저와 그녀는 거의 매일 만나고, 같이 밥을 먹고, 영화를 보고, 술을 마시고, 많은 대화를 나누고, 문자메시지를 주고 받고, 전화를 하고, 소소한 일상까지 공유하게 됩니다. 그렇게 점점 내 일상의 모든 부분이 그녀를 중심으로 돌아가기 시작합니다. 그녀는 내 우주의 중심이 됐습니다.

사실 좋았던 날만 있었던건 아니였어요. 전 어렸을 때 부터 사람 관찰하는걸 좋아했습니다. 그녀와 가까워지고 이야기를 하게 되면서도 저는 그녀에게는 무언가 넘어설 수 없는 벽이 있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가까워지려고해도 부딪히게 되는 알 수 없는 벽.

사실 누군가를 만나고, 그러다 헤어지고, 무 자를 듯 쉽게 관계를 정리하고. 소위 말하는 ‘쿨’한 사이 같은건 애초에 자신 없지만. 그리고 정말 마음을 터놓은 사이였다면 그렇게 할 수도 없을 것 같지만… 끊음에는 자신이 없다고 하더라도… 온전히 그녀를 좋아하고 있는 내 마음을 잘 표현하고 말하는 일은 정말 자신있었습니다. 그리고 나와 마찬가지로 그녀도 그래주길 바랬는데. 뭐라고 딱히 꼬집어서 잘못된 부분은 없는데 어색한 느낌을 때때로 받게 됐습니다. 웃는 모습 속에서도 진지한 대화속에서도… 시간이 지나도 원인을 찾을 수 없자 너무 빨리 가까워진 사이라서 그런거라 혼자서 결론을 짓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날씨가 더웠던 어느 날. 저녁 무렵 산책을 겸해서 마트에 놀러가던 길이였습니다. 마트 놀이. 그녀가 좋아하는 것 중 하나였죠.  한적한 길을 걷던 중 그녀가 짐짓 어두운 표정으로 말을 꺼냅니다. 사실 자긴 이미 결혼을 했었다고. 그리고 아이가 있다고. 지금을 만나고 있진 않다고. 가끔 생각은 난다고. 사실 저는 그게 실제라고 믿었습니다. 눈치가 정말 빠르다고 생각했는데..

‘아 이게 그 벽이라고 느꼈던 부분이구나’ 그리고 순간 가능하지 않았던 아무렇지 않다는 듯 ‘쿨’한 척을 하게되었죠. 자기가 한 거짓말이 짐짓 커지는걸 불안하게 느낀 그녀가 십여분 뒤 장난 친거라는  말을 하기까지 말이죠. 물론 그날 마트 놀이는 참 당황스러운 기억으로만 남게 됐습니다. 그녀는 무슨 생각일까요? 그래도 그 말, 뭔가 벽이 느껴진다는 말을 꺼내면 정말 그런 벽이 갑자기 생길 것 같단 불안감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냥 참습니다. 느껴도 모른 척 합니다.

그리고 둘이서 술을 꽤 많이 마셨던 어느 날. 마음 속의 이야기를 꺼내게 됐습니다. 그런데 그녀의 대답은 의외입니다. 자긴 그런걸 잘 모르겠다고. 그 이전에 만났던 사람들보다 훨씬 따뜻하게, 살갑게 대하는거 같다고. 그리고 그녀는 더 솔직해지려는 듯 자신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물론 중간 중간 별로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들도 있었지만. 좋은 이야기만 들을 순 없으니까요. 어쩌면 그녀의 벽은 내가 재미없어 하는 이야기에 속해있을지 모르니까요.

그 대화를 나누고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자 신기하게 벽이 없어진 느낌이 들었습니다. 무엇 때문일까요? 그녀가 털어놓은 이야기 때문일까요? 제가 느끼고 있던 벽이란 존재를 알게 되서일까요? 아니면 그냥 모두 다 제 착각이였을까요?

사실 그로부터 꽤 많은 시간이 지나도 원인을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언젠가 그녀의 친한 친구를 만난 적이 있는데. 그 친구도 마찬가지의 이야기를 꺼내더군요. 이 아이 예전부터 그랬다고. 이제 적어도. 난 그녀에게 중요한 어떤 한 사람이 된거겠죠? 아주 많이.. 그 일이 있기 전까진 그랬어요. 다음의 다툼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