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하신지 며칠이 지났다.
죄송스럽게도, 하지만 솔직히 그전에 병원에 계신 기간 동안 뉴스에서 간간히 위독한 사실을 반복적으로 노출한 탓에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만큼 놀라진 않았다. 그렇다고 분명 슬픔의 크기가 작아지는건 아니지만... 그리고 하루 하루가 지날수록 그에 대한 이야기를 들고 있으면 슬픔은 점점 커져가는 것 같다. 블로그에 제대로 된 글을 쓰고 싶었지만 이제야 늦게 글을 남겨본다.

돌아보면 그가 대통령이 되던 1997년에 나는 고2였다. 그때에도 정치에 대한 관심이 있었지만, 부산에서 살고 있는 고2 학생이 정치에 관심이 있어봐야 얼마나 있었을까. (전라도 출신이신) 부모님은 대선에서 DJ를 찍었다지만, 거기까지였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2002년. 이번에는 군대였다.
군대 속에서 진행된 부재자 투표에서 '노무현'을 찍었지만, 군대에서의 정치에 대한 관심도 그리 크지 않았었고, 큰 관심을 가질 수도 없었던 공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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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의 감정은 잘 기억이 나지 않고, 2002년 김대중 전 대통령은 여러가지 구설수와 의혹으로 인해서 힘든 모습만 남아있다. 불과 얼마전 북한으로 가서 김정일 위원장과 악수를 나눴을 때 머리가 아니라, 몸이 느끼던 전율을 뒤로하고 말이다. (물론 단임제를 가진 대한민국에서 임기말의 레임덕은 누구라도 그 모습을 피할 수 없을 것 같지만...)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으로 마침내 당선됐을 때 사람들은 환호했고, 나 역시 환호했다. 그는 누가봐도 정치판에서 마이너였고, 마이너가 대통령이 될 수 있는 정말 보통 사람들을 위한 시대가 열린 것 같았다.
'우리나라가 진짜 민주주의를 하는구나'라고 느꼈던 감정.


그리고 사람들은 말했다. '3김 시대가 드디어 끝이났다고' 그리고 나도 그 말을 그냥 문자 그대로 받아들였다.
지역 감정에 기반했던 3김시대는 끝났다.

정리하자면... 더 젊고, 훨씬 의욕적이고, 더 진보적인 것처럼 보이는, 지역주의를 타파하려고 노력했던 노무현과 그 이전의 시대를 2분법으로 구분해버린거다. 물론 그렇다고 그를 군사독재 시대와 연결시키는 무례를 범하진 않았지만, DJ/YS/JP라는 소위 두 자 이니셜의 정치인을 하나로 묶어서 생각했던건 사실이다. YS도 부산에 기대서 정치를 하지만, DJ도 마찬가지로 전라도에서 절대지지를 받고 있으니까...

그들이 돌아가면서 대통령을 한거라고 생각했고, 이제 새로운 시대가 왔다고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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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랬는데...
그는 2009년에 다시 '민주주의'를 외쳐야했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그 하나의 힘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지만, 과정속에서 그가 목숨걸고 쏟아부었던 노력과 역할을 부정하는 사람은 (의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하자, 그는 목놓아 울 수 밖에 없으면서도, 정부에 막혀 추도문도 읽지 못했다. 우리는 세상이 계속 발전하기만 하는건 아니였던 것을, 그리고 우리가 방심한 사이에 정말 '잃어버린 10년'이 생길 수 있다는걸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박노자 교수는 그의 블로그에 김대중 전 대통령을 "좋은 보수주의자"라고 썼다.
좋은 보수주의자는 무엇보다 자유주의적 가치를 진심으로 믿고, 그 가치들을 - 자신의 목숨을 위험에 노출시키면서까지 - 실천하려 하는 사람, 그리고 "온전한 자유민주주의적 국민 국가"의 건설 및 운영을 그 어떤 개인적/파벌적 이해관계보다 더 우위에 두는 사람입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민주주의'적이지 않은 것을 싫어했다. 그는 진짜 '보수'가 뭔지 우리에게 가르쳐준 사람이다. '보수'가 나쁜게 아니라, '나쁜 보수주의자'가 나쁜 것이다. 많은 나쁜 보수주의자들은 사람들을 속이고, 자신들에게 지지하도록 하기 위해서 그에게 빨갱이 이미지를 씌웠다. 만약 그들이 말하는 '빨갱이 김대중'이 북한에 있었다면, 그는 북한의 독재체제를 무너뜨리기 위해서 마찬가지로 목숨을 걸었지 않았을까? 그런면에서 진짜 우리나라가 지켜야 할 체제의 우수성과 소중한 자유민주주의를 침해하는 빨갱이는 '나쁜 보수주의자'들이다.



돌아보면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절대 YS/JP와 엮여서 분류되어서는 안되는 분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사실 노무현 전 대통령이라는 마이너가 대통령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것도 '김대중'이라는 사람에게 상당히 공이 있었단 사실이다. 같은 당이라서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그에게 기대고 있었으니까. 아무튼 그런 생각이 김대중 전 대통령께 얼마나 죄송스러운 생각인지 깨닫고 있었는데...

그는 더이상 이제 우리 곁에 없다. 무엇보다 가슴 아픈 것은 그가 2009년에 서거했다는 사실이다. 그가 다시 민주주의를 외치면서도 더 밝은 내일을 보지 못했단 사실이다. 우린 상황이 나빠지고 나서야 좋았을 때를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게 우리 잘못인줄 알지만 죄송스럽게도 그를 이대로 놔줄수가 없다. 비싼 값을 내고 하고 있는 지금의 '민주주의 공부'에 그가 숙제 검사를 해줘야할테니까. 그는 정치인이 아니면, 교육자가 됐을거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가 기꺼이 이 숙제 검사를 해줄거라 믿어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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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내야 할 것 같다.
나쁜 보수주의자'들까지 좋게 만들 수는 없겠지만, 세상에 합리적이고 올바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면 다시 우리가 민주주의를 올바르게 세우고, 그들 두 사람에게 '당신들 없이 우리가 이렇게 했으니, 그만 걱정하시고 이제부터 편히 쉬시라'고 말할 수 있을 때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아니, 만들어야 한다.

평생을 고단하게 사셨던 그는 서거 한 달 전까지 민주주의를 외쳤다. 나는 비록 그를 잘 알지 못하지만, 그가 결국은 우리가 민주주의를 바로 세울 것임을 알고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는 더 어려운 상황속에서 그걸 현실로 만든 '인동초'같은 사람이였으니까...


민주주의자 김대중 대통령.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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