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 아이패드(The new iPad)가 국내에 출시되던 날, 출근길에 근처 SKT 대리점에 들러 새로운 아이패드를 구입했습니다. 아이패드의 첫 모델이 출시될 무렵 회사에서는 구성원들이 새로운 디바이스와 그 디바이스가 만들어 낼 변화를 체험할 수 있도록 스마트패드 장려금을 제공하고 있었죠. 그럼에도 아이패드 혹은 갤럽시탭 등을 구입하지 않았던 것은 개인적으로 그다지 쓸모가 있을 것 같지 않았고, 안그래도 아이폰이 뺏은 책 읽는 시간을 더 뺏기고 싶지 않았던 이유가 컸습니다.

그런데 뉴 아이패드를 망설임 없이 구매한 것은 변화의 물결이 출렁이는 것을 보았다는 것은 아니고 Dan Frakes라는 사람이 쓴 칼럼 때문입니다. 순전히 저 칼럼 하나 때문이죠.

사실 별로 기대는 안 했다. 3월 16일 새로운 아이패드를 받기 전까지, 애플 아이패드 공개 행사에 참여했거나 리뷰용으로 아이패드를 받았던 다른 사람들에게 들은 이야기라고는 애플이 새로운 레티나 디스플레이를 민다는 것이 전부였다. 필자는 아이폰 3GS에서 아이폰 4로 가면서 레티나 디스플레이가 주는 그 급격한 변화를 이미 경험했기 때문에 큰 기대감은 들지 않았다.

이 생각은 빗나갔다. 새 디스플레이를 처음 본 순간 할 말을 잊었고, 처음 얼마간 사용한 후에는 완전히 생각이 바뀌어 있었다.

새로운 디스플레이는 그야말로 경이적이다. 좋으리라 예상했지만 정말 좋다. 대단히, 엄청나게 좋다. 화면에 표시되는 텍스트의 선명함은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수준이다. 물론 화소 밀집도는 아이폰 4와 4S가 더 높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이패드를 사용하는 거리를 기준으로 보면 거의 차이를 인지할 수 없다. 더 중요한 부분은 아이폰의 화면 크기는 3.5형(대각선)에 불과하지만 아이패드는 9.7형이란 점이다. 표준 편지지 크기의 레티나 디스플레이를 사용한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필자는 텍스트 중심의 앱을 열거나 텍스트를 확대/축소할 때 지금도 여전히 놀라곤 한다.

 
실제 그렇습니다. 아이폰3GS를 시작으로 4S를 쓰고 있는 저의 경우 그 사이의 디스플레이의 발전은 눈부시지만, 9.7인치 크기의 레티나 디스플레이의 뉴 아이패드의 화면은 정말 놀랍습니다. 이어진 글을 좀 더 살펴보면,
 

필자의 동료인 제이슨 스넬과 렉스 프라이드먼 역시 비슷한 의견이다. 제이슨은 “일단 레티나 디스플레이를 접하고 나면 그 이전의 다른 것으로는 돌아가기 어렵다”고 썼으며, 렉스는 “뉴 아이패드의 주 용도가 독서라면 뉴 아이패드와 레티나 디스플레이의 장점을 십분 활용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필자의 결론은 한걸음 더 나간다. 텍스트 읽기에 관한 한 뉴 아이패드는 지금껏 경험한 최고의 기기다.

필자는 하루에 몇 시간씩 아이패드에서 읽기 때문에 텍스트와 읽기가 특히 중요하다. 아침에는 이메일과 트위터를 확인하고, 점심 시간에는 RSS 피드를 읽고, 매일 밤 2-3시간 정도 RSS 피드와 저장된 인스타페이퍼 기사, 트위터, 전자책을 읽는다. 이러한 읽기 작업을 위해 뉴 아이패드를 볼 때마다 또렷하고 선명한 텍스트에 감탄한다. 글자가 보기 좋으면 읽기는 더 쉽고 더 즐거워진다(물론 읽기에 사용하는 앱이 레티나 디스플레이에 맞게 업데이트된 경우의 이야기임).
텍스트 읽기에 관해서 뉴 아이패드는 종이 질감의 책에서 우리가 느끼는 아날로그적인 경험과 감성을 디지털이 따라잡을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뉴 아이패드 구매 전 ebook 시장과 디바이스에 대해서 당장 그다지 매력적으로 느끼지 못한 이유 중 하나는 ebook이 가장 큰 장점으로 내세우는 수많은 책을 하나의 디바이스에 가지고 다닐 수 있다는 점 때문이였습니다. 물론 우리가 경험 하는 대부분의 것들은 결국은 디지털로 가게 됩니다. 언젠가는.

그럼에도 종이로 인쇄된 책이 주는 매력은 음악과 영화가 이미 대부분 디지털화한 것에 비해서 비교적 그 위치가 굳건합니다. 책을 많이 가지고 있을 수 있다는 장점은 어떤 경우 분명 매력이지만, 다양한 데이터를 순식간에 저장할 수 있는 기기들과 별개로 사람이 읽을 수 있는 책은 한 번에 한 권이니까요. 책장에 꽂힌 책들 중 무엇을 먼저 읽을지를 선택하는 것도 쉬운일이 아닌데 그걸 디바이스에 모두 담아두고 잠금해제할 때마다 고민해야 한다니… 더욱이 아이패드와 같은 제품들은 책을 읽지 않게 만드는 온갖 유혹들이 함께 들어있습니다.

하지만 아이패드 구매 후 가방에 책 대신 아이패드를 넣고 다닙니다. 물론 저는 여전히 한 번에 한 개의 글만 받아들일 수 있고, 온갖 유혹은 여전합니다. 어떤 책의 무게보다는 가볍지만 어떤 책의 무게보다는 무거운 아이패드의 무게도 한 손으로 들고 보기엔 적당히 타협한 수준으로 보여집니다. 더 가볍게 만들자니 배터리가 문제이고, 더 무겁게 만들어서 사용 시간을 늘리면 들기 힘들 것 같고.

읽고 싶은 책들은 아직은 판매하고 있지 않아서 책보다는, PDF를 보거나, 트윗믹스에서 이슈를 확인하거나, RSS리더를 통해서 블로그의 글을 보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덕분에 좋은 글을 보면 공유하려고 트위터를 조금 더 많이 하게 됐죠. 컴퓨터에서도 읽을만한 글을 발견하면 Pocket에 저장해두고 꺼내서 읽습니다. 아이폰에서는 좀처럼 유료앱을 사는 경우가 없었는데 4.99$를 줘가며 GoodReader와 같은 PDF리더 앱을 사용하려고 한 달에 9.99$나 되는 Dropbox 유료 서비스를 결제했고, 그러면서 기존에 PC와 노트북, 아이폰 사이에서 동기화를 위해 사용하던 유클라우드(uCloud)는 해지하고 Dropbox로 대체했습니다. 책 구매는 분명히 줄었고, 더 분명한 것은 책을 구매해야겠다는 생각도 줄었습니다. 여자친구는 (읽지도 않고) 책만 산다고 그랬는데 말이죠.

결국 내가 무언가를 읽기 위해서 지출하는 전체 비용은 늘었고, 디지털 기기와 이에 최적화된 서비스를 사용하기 위한 지출이 그 자리를 차지하면서, 종이책을 구매하며 서점과 출판사로 가던 지출은 줄었습니다. 세계적으로 책 판매량은 줄고 있고, 그 이면에서는 사람들이 남는 시간에 책을 보기 보다는 스마트폰을 가지고 노는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기 때문이지만. 이제 앞으로 읽기경험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이 경험을 위해서 대가를 지불하는 곳이 바뀌게 될 것입니다.

아이폰 디바이스 하나가 세상을 이만큼 바꿨듯이, 아이패드도 세상을 빠르게 변화시킬 것 같습니다. 음악을 듣기 위한 휴대용 mp3 플레이어에 브라우저를 넣고, 와이파이를 넣고, 앱스토어에, 전화기능까지 넣자 세상이 요동친 것처럼. 읽기경험에 최적화된 아이패드를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사용자와 이 디바이스가 만나는 지점, 그러니까 책에 길들여진 사용자가 책이 아니고도 그런 수준의 경험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놀라운 디스플레이인 것 같습니다.

국내 주요 온라인 서점은 이미 ebook 판매에 뛰어 들었고, 디바이스가 아닌 컨텐츠 경쟁에서는 애플이나 구글 같은 미국 회사들이 국내에 미칠 영향력이 그다지 크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출판사 사장님! 빨리 가지고 있는 모든 책을 다 디지털로 전환해서 ebook 앱을 만드는 사업자들에게 뿌려서 기회를 잡으세요. 책이 많이 없어요!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