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풍기 살인마라는 말은 여름만 되면 단골로 등장하는 뉴스입니다. 대부분의 (한국) 사람은 알고 있는, 밀폐된 방에서 선풍기를 틀고 자다가 사망했다라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뉴스 기사를 믿으시나요? 믿지 않으셔도 부모님으로부터 조심하라는 이야기를 들어보셨겠죠? 이를테면 ‘선풍기 틀고 잘려면 얼굴쪽으로 하지말고, 창문을 꼭 열어두어라’라는 종류의 말들입니다. 그리고 믿든, 안믿든 우리는 대부분 그렇게 행동합니다.

선풍기에 의한 죽음에 이를 수 있다는 근거는 “산소부족에 의한 질식사” 혹은 “저체온증에 의한 사망”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술에 취해서 잠이 들었다”라는 부제가 달려있죠. 대부분의 경우 우리의 신체는 주변환경의 변화에 대해서 즉각적으로 반응함으로, 선풍기에 의한 사망 사건의 경우 신체의 변화를 감지하지 못할 만큼의 상황에 빠져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이런 믿음은 한국인만 가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쯤되면 뭔가 이상하지 않으신가요? 오늘 그 이야기를 좀 해보겠습니다.

이 논쟁은 아주 명확해 보이면서도, 의외로 복잡한 문제입니다. 몇년 동안 지속적으로 반론과 또 새로운 사망 기사가 올라오는 현실인데요. 문제가 되는 부분은 선풍기에서 유발되는 바람이 수면 도중에 “사망에 이를 정도의 저체온증”을 유발하거나, “심각한 산소 부족 상태”에 빠질 수 있는가 하는 부분입니다.

[관련 뉴스] “선풍기.에어컨 켜고 잘땐 방문 열어두세요” – 소비자보호원

기사에 의하면 최근 3년간 선풍기(에어컨)에 의한 사망사고는 20건에 이릅니다. 여름에 한정적으로 사용되는 제품이라는점은 감안하면 과히 살인마라 불릴 정도인데요. 기사에서는…

더운 여름 선풍기 바람을 한 부위에만 직접 쐬면 몸 안 수분을 지속적으로 빼앗겨 체온이 저하되며 이를 오래 지속할 경우 이산화탄소 포화농도가 높아지고 산소농도가 떨어져 산소부족으로 사망할 수 있다는 게 소보원의 설명이다.

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런 정도의 정보는 소보원의 설명이 필요없이 대부분의 한국 사람은 인지하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

이 기사에서 언급한 선풍기에 의한 사망을 말도 안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증거는 실제 사례입니다. 반대로 기사의 근거가 되는 자료는 아이러니하게도, 역시 실제 사례죠. 먼저 반박하는 사람들의 주장은 이렇습니다. 선풍기는 전세계적으로 사용되는 제품입니다. (물론 일부 추운나라는 안 쓰겠지만요) 그런데 왜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선풍기에 의해서 죽는 사람이 발생하는 걸까요?
반면 선풍기에 의해 죽음에 이를 수도 있다라는 쪽은 ‘실제로 선풍기 틀어놓고 죽은 사람이 있는데 그건 어떻게 설명할꺼냐’라는 겁니다. 역시나 그렇다면 조심하는게 좋다는…

하지만 가까운 나라 일본에서는 선풍기에 의해서 죽지 않는데, 왜 한국에선 선풍기 때문에 죽을까요? 미국에선 죽지 않고, 한국에선 선풍기 때문에 죽는다? 만약 선풍기가 사람을 죽음에 이를 정도로 위험하다면, 무언가 다른 조치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이를테면 사용자가 작동시키는 타이머가 아닌, 최소한 한두시간 작동한 이후에 자동으로 꺼지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요? 바람의 강도를 더욱 낮추게 만들고, 공기를 측정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서 이산화탄소 농도를 측정하고, 특정 온도이하에서는 작동을 금지시켜야 하지 않을까요?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쟁점이 되는 부분을 하나씩 따져봅니다.

쟁점 :: #1 저체온증
첫번재 중요한 쟁점은 선풍기의 바람이 과연 사람을 죽일 정도로 저체온증에 빠지게 하는가 하는 점입니다. 저체온증은 신체의 온도, 즉 체온이 35도 이하로 떨어질때 발생하는 현상입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사망에 이를정도가 될려면 27-28도에 이르러야 된다고 합니다. 과연 선풍기 바람으로 신체의 온도를 10도 이상 떨어뜨릴 수 있을까요? 대부분의 전문가적인 견해는 약간은 몰라도 10도 까지는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우리 몸은 선풍기보다 훨신 복잡한 매커니즘을 가지고 있어서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입니다.

조금 더 살펴보겠습니다. 선풍기를 쐬면 시원하다는 느낌을 가지게 됩니다. 그러니 혹시 바람을 계속 쐬게 되면 체온을 계속 떨어뜨리면서 저체온증에 빠지게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선풍기는 사람으로 하여금 시원하다는 느낌을 가지게 할 뿐, 실제 체내의 온도를 떨어뜨리거나, 주변 온도를 떨어뜨리는건 아닙니다. 실제 실험에서도 선풍기 바람은 체온에 크게 영향을 주지 못했습니다.

땀을 흘렸을 경우, 땀이 선풍기 바람에 날아가면서 체온을 떨어뜨릴 수 있기는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시원하다고 느끼는거죠. 하지만 그렇더라 하더라도, 신체는 곧 이런 변화를 감지하고 자동으로 체온을 높이는 작용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더운날 선풍기 바람을 쐬더라도, 잠시 시원하다는 느낌일 분.. 더운 상태는 그대로 지속되는거죠. 만약 어느정도 온도가 낮은 날, 땀을 흘렀다면 선풍기가 아주 큰 효과를 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기온이 높다면, 선풍기도 역시 그 높은 온도의 바람을 내뿜을 뿐입니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실제 체온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한쪽에서는 (사망자 다수에게 발견되는 것으로) 술에 취해서 우리 신체의 기능이 작동되지 않을 수 있다는 근거를 제시합니다. 알콜이 중추신경계를 마비시켜서 그렇게 된다는 건데요. 만약 저체온증을 유발하기 위해서는, 선풍기에 의해서 체온이 낮아지게 되며 신체는 체온을 높이게 되고, 체온이 높아지면 땀이나게 되고 선풍기에 의해서 점점 체온은 낮아지고, 저체온증에 이른다는 결론이 나와야합니다. 그런데 사실 이 말은 내용 자체에 오류가 있습니다.

자율신경계가 정상적으로 작동한다면 온도 변화에 신체가 충분히 반응할 것이고.. (술에 취해서) 신경계가 잘 작동하지 않으면 체온을 높이지도, 떨어뜨리지도 못하는 상태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선풍기가 지속적으로 실제 온도에 비해 아주 차가운 바람을 내뿜지 않는한 체온 저하로 죽을 수는 없다는 것이죠. 땀이 나는 것, 역시 더위에 우리 신체가 반응하는 것이니 말이죠.

쟁점 :: #2 산소부족 = 질식사
질식사 문제는 저체온증보다 조금 더 난감한 이야기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의 전문가들중에 일부에서는 저체온증의 가능성을 언급하지만, 그들도 질식사에 의한 사망은 언급하지 않습니다. 이유는 굳이 얼굴을 향하지 않게 하고 자는 사람도 사망했다는 보고가 다수이기 때문입니다. 질식사 문제를 강하게 주장하는 집단은 작년 기사를 올해 또 써먹는 언론입니다.

그래도 잠시 살펴보면 질식사의 경우 두가지로 세분되는데요. 첫번째는 선풍기의 바람이 사람의 호흡을 직접적으로 방해하다는 겁니다. 딱 들어봐도, 근거가 없는 얘기입니다. 선풍기 바람을 얼굴에 바로 대고 자는것도 아니고, 선풍기의 바람이 숨을 못 쉴 정도로 강한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묶여 있는 상태도 아니니까요. 선풍기는 호흡이 불가능할 정도의 바람을 내뿜지 않습니다.

두번째는 실내의 이산화탄소의 농도라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호흡은 산소를 들여마시고, 이산화탄소를 내보는건데.. 실내에 이산화탄소의 농도가 지나치게 높고, 산소의 농도가 낮다면 공기를 들여마셔도 체내에 필요한 산소의 양은 부족할 수 밖에 없다는게 근거입니다. 특히 이산화탄소의 질량은 산소의 질량보다 무겁기 때문에, 한국의 방의 구조처럼 창문이 높은 경우 바닥에 깔린 높은 농도의 이산화탄소가 포함된 공기를 체내에 흡수하게 되고, 죽음에 이른다라는거죠. 물론 여기서도 조건은 만취상태가 포함되어야 합니다. 공기가 순환하지 못하는 밀폐구조여야 하구요.

쟁점은 과연 바닥에 이산화탄소가 우리를 죽음에 이르게 할 정도로 머물러 있냐는 겁니다. 완벽히 밀폐된 방에서 계속 산다면, 물론 이산화탄소의 양이 늘어서 죽음에 이르겠지만.. 방의 구조가 그런 경우가 있느냐는거죠? 창문을 완전히 닫는다고 하더라도, 공기가 전혀 통하지 않을 정도의 밀폐된 방을 만드는 것은 사실 불가능합니다. 밀폐라는 말은 창문이 닫겨있다는 것이지, 공기가 완벽히 차단되어 있는 밀폐는 아닙니다. 화재처럼 불이 타면서 산소를 소비하고, 이산화탄소를 내놓는 극적인 상황이라면 모를까, 선풍기와 사람이 방에 누워서 그정도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건 불가능합니다. 결정적으로 이산화탄소가 고스란히 바닥에 깔려있는 것도 말도 안되는 이야기죠. 공기를 순환시키는 선풍기 바람은 어떻게..?

#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 선풍기 사망 사고는 존재한다?
그런데 이런 문제제기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럼 도대체 선풍기로 죽은 사람들은 뭐냐?”라는 질문이죠. 뉴스에 나오는 사람들, 소방수들, 경찰들, 방송, 신문, 소비자보호원이 다 바보냐? 라는 겁니다.

여기에 대한 대답은 선풍기가 사망을 유발하는 직접 요인은 될 수 없다는 겁니다. 간단한 예로 도저히 회생이 불가능한 병을 앓는 환자가 걸어가다가 차에 치여서 죽었다면, 사인은 당연히 교통사고가 되겠죠. 실제로 국과수에서 선풍기에 의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환자를 부검했던 서울대 교수의 말에 의하면, 사망자의 경우 심장 질환이나 알콜중독같은 다른 질병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 환자들은 다른 병으로 죽었는데, 옆에 놓여 있던 선풍기 때문에.. 어느 순간부터 온국민이 선풍기를 두려워하고 있는 것입니다.

# 정말 선풍기가 위험하다면…
만약 정말 우리가 믿었던 것처럼 선풍기가 그렇게 위험하다면, 무언가 강력한 규제가 필요합니다.하지만 외국에서 선풍기에 의해 죽는 사람이 없는데, 우리나라에만 그런 사례가 보고 된다면.. 조치를 취하기 전에, 한번 우리가 가진 일상적인 믿음을 의심해봐야 합니다. 선풍기로 실제 죽음에 이르렀다면, 미국 같이 소송이 발달하는 나라에서는 선풍기를 만드는 회사는 살아남기 힘들꺼란 생각이 들지 않으시나요? 이 사건에 대해서 우리나라의 문제는, 일부 언론이나 보통의 사람들뿐 아니라 의사같은 전문가 집단마저도 선풍기가 실제 위험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겁니다. 근거없는 주장의 재생산이 되는것이죠.

“닫힌 창문” , “질식한 변사체” , “알콜 냄새” , “돌아가는 선풍기” :: 이런 조건이 갖춰지면, 선풍기 때문에 죽었다고 단정짓기 전에, 다른 사인을 먼저 찾아봐야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뉴스에서는 사실 확인도 없이, 이런 얘기를 다시 재생산하는 일을 그만둬야 하겠죠.

아울러 정부에서는 서둘러 여기에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기사처럼 3년간 20명이면, 한해 7명이 선풍기 때문에 죽는다는 얘기입니다. 해마다 여름이면 고정적으로 말이죠. 반대로 생각해서, 어쩌면 한해 7명의 사람들은 잘못된 사인을 자손에게 알려주고, 진짜 죽는 이유를 모른체 죽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선풍기에 문제가 있는지 제대로 과학적인 실험 한번 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 과학적인 근거도 없이, 대한민국에 사는 국민들이 외국에선 미신이니, 도시괴담이니 하는 말을 믿고 있어서야 되겠습니까?

선풍기에 의한 사망원인을 밝히는데는 사실 많은 투자가 필요없습니다. 몇 만원짜리 선풍기 몇 대와 실험실, 조교, 실험용 쥐들만 있으면 됩니다. 다른 실험과 달리 이 쥐들은 실험이후에도 살아남을 것으로 저는 믿습니다. 생명은 소중한 것이니 다행입니다. 아마도 외국에선 선풍기 사망사고를 믿지 않고 있으니 실험을 하지도 않을 것 입니다. 혹시 만약, 정말 선풍기가 죽음을 유발한다면, (비록 불쌍한 쥐들은 죽겠지만) 이 미스테리한 죽음의 원인을 실험으로 밝혀내는걸테니 우리가 전세계 최초입니다.!! (그리고 나면, 앞서 언급한 보다 안전한 선풍기를 만들어서 전세계에 보급하는거죠)

때론 우리 모두가 당연하게 믿고 있는 어떤 사실이 정말 진실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결국 최소한 한번은 우리가 믿는 것들이 진실인지를 다시 한번 확인해봐야 합니다.

[참고 자료] 위키피디아 ‘선풍기 사망 사고’

남은 이야기들…
* 그럼에도 여름에는 선풍기를 틀 때, 꼭 창문을 열어놓으시라 권하고 싶습니다. 창문 닫으면 더워 죽을지 모르므로… ^^ 다른 이야기지만, 실제로 더운 여름에 소주를 만취상태로(더운 여름에 창문도 열 정신이 없을 정도로) 마시고, 누워서 자면 이 자체가 상당히 위험한 행동입니다. 선풍기는 있던 없던 상관없습니다. 선풍기를 틀때는 발쪽으로 하는건 밤새 바람을 맞은 얼굴이 붓지 않는데 도움이 됩니다.

* 온도를 직접적으로 낮추는 에어컨은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을까요? 그것도 가능성없습니다. 에어컨의 온도가 한정없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대부분 일정 온도 이하로는 조절이 안됩니다. 신체는 당연히 온도 변화에 반응합니다. 에어컨으로 사람이 죽을려면 한 겨울에 문을 열고, 에어컨을 틀면 저체온증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도 에어컨은 켜나, 안켜나 마찬가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