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와 싸웠습니다.
사실 모든 연인은 싸웁니다. 그게 연인이 된지 하루만에 일어나든, 한 달만에 일어나든, 일 년이 걸리든 차이가 있을 뿐. 그 주기가 매일이든, 한 달에 한 번이든, 아니면 아주 가끔이든 차이는 있겠지만.

아주 옛날, 그러니까 지금보다 사는게 훨씬 불확실성이 높았을 사냥하며 살았을 시기부터 세상 일에 대처하는 남녀의 차이가 있었고. 그런 경험들은 생존을 위해 우리의 뇌 어딘가에 고스란히 각인이 되어 화성인과 금성인의 거리만큼의 차이를 만들었습니다. 서로 이렇게 상대방을 만날 때까지 서로 다른 환경속에서 살아왔기도하죠. 결국 우리가 어떤 일에 어떻게 반응할지는 저마다 다를테니까요. 우린 다르고, 다르게 자랐고, 다르게 반응하고, 다르게 생각합니다. 그런 우리가 이렇게 서로 생각하고 연인이 된 것은 기적같이 아름다운 일이였지만.

그 다름이 드러났던 어느 날.
거창하게 이야기를 시작했지만. 사실 연인들이 싸우는 그런 이유가 시작이였습니다. 문제의 발단은 ‘이전’ 관계들. 시작은 저였습니다(원래 이런 잘못은 대부분 남자들이 먼저 저지릅니다. 대부분!)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 저는 이전 여자친구와 헤어진지가 얼마되지 않았던 상횡이였습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알고 있던 그녀는 그 부분을 상당히 신경쓰고 있었죠. 확실하게 정리됐다고 생각하는 ‘나’를 믿는 ‘나’와, 내 속은 모른채 그런 ‘내 말’을 믿어야 하는 ‘그녀’.

제 이전 여자친구에게서 때때로 전화가 걸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정리하기 너무 힘들다는 이야기였었고. 그걸 알게 된 그녀는 그 상황을 상당히 불편해했습니다. 물론 저도 가시방석에 앉은 것 같았죠. 같이 술을 꽤 취하도록 마셨던 그날 밤 문제가 터졌습니다. 몇 차례의 작은 다툼에도 불구하고 이전 여자친구에게서 연락이 거듭되자, 그녀는 제게 무언가 강력한 조치를 하기를 원했습니다. 문제를 더 크게 만들기 싫었던 저는 그냥 가만히 두면 저절로 없어질거라는 말을 되풀이했죠. 같은 상황을 보고 있지만, 다른 해석과 다른 해법. 서로의 목소리가 점점 더 커졌습니다.

싸움을 하게 되면, 정신 없이 많은 이야기가 오고가면, 때로는 (다시 한 번만 생각했다면) 꺼내지 않으면 좋았을 이야기를 하게됩니다. 사실 불편한 연락이 오고 있었던건 저만이 아니였습니다. 그녀의 전 남자친구에게도 가끔 전화가 걸려오고 있었습니다. 빈도는 덜했지만요. 그녀는 받지 않았고, 그러다보니 한 번 걸려오면 여러 번 계속해서 걸려왔고, 그녀는 그 사람과 헤어진지 1년이 넘게 지났다고는 하지만 신경 쓰이는건 저도 마찬가지였거든요.

물론 상황의 차이가 좀 있긴 했습니다. 그런데 싸움중이잖아요. 저는 제 방패로 그녀의 전 남자친구 이야기를 꺼내들었습니다. 나만 그러는건 아니지 않냐고. 쌍방과실이라는 주장. 똑똑한 방법이긴 했지만 사실 비겁한 방법이였습니다. 하지만 싸움 중이니까. 그런 생각을 할 겨를 없이 이야기를 이어갔습니다. 어쨌든 잘못은 잘못이라고. 입장의 차이지 나한테도 큰 문제라고. 그러니 나한테만 너무 그러지 말라고. 목소리가 더 커졌고. 표현이 거칠어졌고. 그녀도 지지 않았고. 감정에 상처를 줄 단어들이 등장하고, 급기야 그녀를 두고 자리를 박차기에 이르렀고. 폭풍같았던 그 얼마의 시간.

그렇게 하루가 저물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이 밝았죠. 이후 뒷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휴대폰에는 부재중전화 몇 통. 사실 그 이야기가 처음 나왔을 때 이미 술이 취해있었던 저는 집에 들어와서 잠이 들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자 전날 적진을 향해 돌격하는 장군 같았던 저는 없어지고, 방안에는 후회를 하고 있는 한 남자만 있었습니다. 전화 벨소리도 못 듣고 잠이 들어버린. 사실 연인 사이에서 싸움이야 그럴수 있는 일이지만, 백 번 양보해서 감정적인 표현들도 그럴수 있다고하지만. 중간에 자리를 박차버린건. 그리고 잠이 들어버린건. 아 이 부재중 전화는 어떻게. . . . . . .

이제 어제 싸움의 이유는 오히려 별 문제가 아닌 상황. 왜 처음부터 저는 죽자고 덤벼든걸까요. 그리고 자리를 박차긴 왜. 아, 잠은 진짜. 수습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나마 서른이 넘어 몇 번의 연애를 거치고 배운 결론은 잘못했을 땐 무조건 낮은 자세. 그리고 바로 사과하기. 전화를 걸고, 받지 않았고, 걸고, 받지 않았고. 속이 타들어 갑니다. 많은 시도 끝에 그녀와 드디어 연결이 됐고. 사과를 했고. 그녀는 울었고. 다시 사과를 했고. 그녀는 계속 울었고. 만나자고 했고. 잠에 들기전 의기양양했던 저는 죄인이 되어 그녀를 만났습니다. 사실 이래서 연인끼리의 싸움은 이유보다 싸우는 상화에 대처하는 방식이 중요합니다. 얼굴을 보자마자 그녀는 다시 울었고. 어떻게 자기를 그곳에 혼자 두고 가버릴 수 있냐고했고, 사과를 했고. 그 하루를 온전히 혼나고서야(앞의 이야기를 십여번 정도 반복) 화해를 했습니다. 이렇게 나와 그녀가 만나서 우리가 된 이후 첫 싸움이야기는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됐습니다. 사실 십여번 반복은 그 날 하루가 그랬고 지금도 아주 가끔씩 혼나고 있습니다. 아무튼 다투던 날 이야기는 여기서 마무리. 휴.

스물 한 살과 서른 한 살의 연애의 차이. 가수 김광석님의 말처럼. 나이에 ‘ㄴ’이 붙을 즈음이면 연애가 결혼을 하든 안하든 단순히 둘 만의 문제가 아니게 됩니다. 연애를 시작함과 동시에 대부분 두 사람 이외의 가족이 관계에 영향을 주게 되죠. 그리고 인사를 하게 되는데요. 참 쉽지 않은 이 어려운 만남 이야기는 다음에…